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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정 대통령 이승만, 레닌과 대결>(17)

-《3.1운동의 기획자 이승만》-인보길의 '위대한 3년' 에서                             

 

연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연설문 끝에 써 있는 대한민국 30년이다. 3.1운동에 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30년이란 의미다. 말할 것도 없이 한성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 건국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소비에트식 쿠데타 임정을 부정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승만이 요즘 친북파 주장처럼 임정을 건국으로 치부할 역사의 문맹자는 아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회에 낸 법안에서 8월 15일을 '독립기념일'로 정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국회가 광복절'로 개명하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다음해 부터 꼬박꼬박 '독립 1주년, 2 주년, 3 주년 ...'이라는 현판을 함께 걸고 광복절 공식 기념행사를 개최하였다.

 

1958년엔 건국 10주년 잔치를 대대적으로 펼쳐 각종 발표회와 백일장을 열고 꽃전차를 운행하고, '해방동이'와는 따로 '건국동이' 선발대회까지 열었다. 신문들은 건국 10주년 특집기사로 전후 발전상을 연재하였다. 건국일은 엄연히 1948년 8월 15일임을 임정초대대통령 이승만이 건국자로서 만방에 엄수해 보인 것이다.


두 번째로 취임사가 '하나님의 은혜로'라는 말로 시작한 점이다. 이것은 한성감옥에서 24세 사형수가 성령의 은혜로 개신교에 입교한 후 '예수의 뒤를 따라 목숨을 버리기까지 새나라 만들어 보답하겠다'고 독립정신에 맹세한 하나님과의 약속을 반세기 만에 끝내 지켜냈다고 보고하는 기도문이라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과 국민과 함께 대통령의 맹세를 거듭한 이승만은 '신성한 국가를 만년반석 위에 세우자'고 다짐하고 있다.

 

세 번째로 연설문 중 또 하나의 초점은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의 조직'에 관한 대목이다. 소문과 억측 보도가 많으나 발표할 명단은 여론과 다를 테니 현혹되지 말라는 것을 굳이 환기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4년 후 전쟁 중 부산 피난수도에서 벌어지는 부산정치파동은 이 대목에서 벌써 예고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파동은 대통령 취임식 바로 사흘 후인 7월 27일 한국 민주당 한민당이 국회 반란을 일으킴으로써 첫 신호탄을 올린다. 8.15 건국 선포식이 열리기 스무날 전에 일어난 일이다. ㅡ 계속됨


☆  메신저 부연

우남이승만의  공산주의 경험은 1919년 이후 수년 동안 상해임시정부 당시 이동휘 등 공산주의자들의 횡포를 겪으면서 체득한 데서 나온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그들은 광복보다 돈과 이념과 파당(破黨)에 몰입하여 분열을 조장했던 것을 경험한 것입니다. 이 기회에 우남은 남달리 예리한 관찰력으로 공산주의에 대해 심층분석을 했고, 놀랍게도 그는 장차 공산주의 멸망까지도 예견하게 됩니다. 

 

 이글을 쓴 1923년 이 후 1945년까지 미국에 체재하는 동안, 우남은 기회있을 때마다 미국 조야(朝野)에 강연과 집회와 개별접촉을 통해 '공산주의를 경계하라' 는 경고를 끊임없이 보냈습니다.

 

당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 조야의 인사들조차 공산주의의 본질에 대해 잘 이해를 하지 못 할 때였습니다. 미국 정부 안에도 공산주의자 내지 친소주의자들이 득시글 거렸을 정도였습니다. 트르만 대통령 때 와서야 비로소 공산주의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으니, 미국인들도 우남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일 것입니다. 마치 이승만 박사가 쓴 일본내막기(Japan Inside Out, 1941)를 통해 일본의 본질에 대해 미국인들이 한 수 배웠듯이.

 

이 글 말미에도 나와 있듯이 당시 우남에게는 광복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따라서 광복에 공산당이 협력을 한다면 우리는 다 공산당 되기를 지체치 않는다는 말까지 하게 됩니다. 이 점이 우리를 다소 혼동케 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우남은 공산주의자들은 본질적으로 그렇게 개과천선할 수 있는 속성이 아니라는 확신을 했기 때문에 자신있게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닐까 봅니다. 우남은 공산주의자들은 광복과 독립보다 정신적 지주국(祖國)인 소련 중심의 세계공산화에 더 충성하고, 겉으로 내세우는 인민의 안위와 이익보다는 자신들의 이(利)속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을 꿰뚫어 봤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입니다.

 

이 글을 통해서 멧신저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많은 사람이 존경해 마지 않는 도산안창호선생과 백범김구선생의 속살입니다. 도산은 우남에 대한 개인적 감정에 사로잡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남을 견제한 듯이 보였고, 백범은 일찌감치부터 독립과 통일이라는 명제하에 공산주의를 용인한 속내를 감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도량넓은 관용일까요? 두 분 다 자유라는 개념에는 우남처럼 충실하지 못 한 것 같습니다. 멧신저의 소견으로는 자유의 가치에 대한 애착이 부족다는 것은 편협해서 세상을 균형있게 보기가 어렵다는 뜻이고, 이것은 곧 외골수적 自己도취형도 될 수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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